4·3유적지


4·3유적지
유적지명 연미마을(오라리 방화사건 현장)
유형

지역구분(행정시) 제주시 지역구분(읍면) 제주읍 지역구분(마을별) 오라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GPS 위도 33.4870555555556, 경도 126.507361111111 약도보러가기

 

 유적지내력

  

○ 4·28 평화협상 사흘만인 5월 1일 벌어진 이른바 ‘오라리 방화사건’은 협상이 파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사건은 제주읍 중심에서 약 2㎞ 가량 떨어진 오라리 연미마을에 우익청년단원들이 대낮에 들이닥쳐 10여 채의 민가를 태우면서 시작됐다.

 

오라리에서는 4‧3무장봉기 이래 무장대와 경찰로부터 각각 죽임을 당하는 인명희생 사건이 몇차례 발생했다. 4월 29일에는 오라리 마을의 대동청년단 부단장과 단원이 납치된 후 행방불명되었고, 4월 30일에는 동서간인 대청단원의 부인 2명이 납치됐는데 두 여인 중 한 명은 맞아 죽고 한 명은 가까스로 탈출해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오라리 방화사건은 5월 1일 벌어졌다. 오전 9시경 전날 무장대에게 살해된 여인의 장례식이 열렸다. 마을 부근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경찰 3~4명과 서청‧대청 단원 30여 명이 참여했다. 매장이 끝나자 트럭은 경찰관만을 태운 채 돌아갔고 청년단원들은 그대로 남았다. 그 중에는 오라리 출신 대청 단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오라리 마을에 진입하면서 좌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사람들의 집들을 찾아다니며 5세대 12채의 민가를 불태웠다.

 

우익청년단원들이 민가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벗어날 무렵인 오후 1시경, 무장대 20명 가량이 총과 죽창을 들고 청년들을 추격했다. 청년단이 급히 피해 이 과정에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 시각을 전후해 마을 어귀에서 이 마을 출신 경찰관의 어머니가 피살되었다.

 

오후 2시경, 서청‧대청 단원들로부터 무장대 출현 소식을 접한 경찰기동대가 2대의 트럭에 나눠 타고 오라리 마을로 출동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무장대는 이미 마을을 떠났고, 주민들은 불붙은 집을 진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마을 어귀에서부터 총을 쏘며 진격해오자 주민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산 쪽으로 도망쳤다. 이 과정에서 고무생 여인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때 어머니를 잃은 박기하는 “어머니가 총에 맞아 숨졌을 때 하늘에서 비행기가 오랫동안 머리 위를 맴돌았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경비대 지프와 트럭이 출현하자 황급히 마을을 떠났다. 평화협상 당사자인 김익렬 연대장도 사건 발생 소식을 듣고 직접 모슬포에서 달려와 현장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경찰의 후원 아래 서청‧대청 등 우익청년단체들이 자행한 방화라고 판단, 미군정을 찾아가 이를 보고했으나 묵살 당했다. 경찰의 보고에 의하면 무장대의 행위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 대해 당시 제9연대 정보주임이었던 이윤락 중위는 “김익렬 연대장과 함께 맨스필드 중령을 찾아가 보고했더니 평화협상 결과에 만족해하던 지난번과는 달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동화여관에 미군 CIC(방첩대)와 G-2(정보참모부) 간부요원들이 와 있으니 그들과 만나 협의하라’고 말했다. 만나보니 G-2 간부는 중령이었고 CIC간부는 소령이었는데, 그들은 우리의 조사보고서에 대해 ‘경찰 보고와 다르다. 그것은 폭도들의 짓이다’라고 막무가내로 주장해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한편 김익렬 연대장은 포기하지 않고 오라리사건의 조사를 계속해 다음 날인 5월 2일 오라리 주민들이 방화 주동자로 지목한 이 마을 출신 대청 단원 박 아무개를 제주읍내에서 검거해 모슬포 영내에 구금 조치했다. 그러나 박 아무개는 김익렬 연대장이 해임된 후 신임 박진경 연대장에 의해 곧 풀려나 경찰에 투신했다. 이는 경비대원들의 불만을 샀고, 후에 박진경 연대장 암살범들이 재판정에서 박진경 연대장의 과오를 지적할 때 그 중의 하나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오라리 방화사건은 미군 촬영반에 의해 입체적으로 촬영됐다. 미군 비행기에 의해 불타는 오라리 마을이 공중에서 찍혔는가 하면, 지상에서는 오라리로 진입하는 경찰기동대의 모습이 함께 촬영되었다. 긴박하게 돌아간 당시의 상황들이 촬영됐다는 것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 무성영화의 필름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돼 있는데 제주4‧3사건의 초기 상황을 다룬 유일한 영상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필름의 제목은 ‘제주도의 메이데이(May Day on Cheju-Do)’로서 존 메릴의 논문 「제주도 반란」에도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미군은 이 영화를 통해 오라리 방화사건이 무장대 측에 의해 저질러진 것처럼 편집해 놓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강경진압의 명분을 얻기 위한 목적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그 시점에 미군의 강경책이 결정돼 있었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출처: 4.3진상조사보고서〉

 

 

 

 

 현장사진

 

  

  

 

 

 

 사료(문서, 사진, 증언)

 

  

 

 

 

 

〇 4·3 기록영화 제주도 메이데이 

 

촬영일 : 1948년 5월 1일 - 5월5일 

촬영처 : SIGNAL CORPS (미군 통신부대)

촬영필름 : 16mm 흑백 무성 필름

카메라맨 : ‘SHAYDAK’

소장처 : 미국립문서보관소 (National Archives) - Film and "shot sheet", May Day in Korea: Cheju-do, 31 April 1948. RG-111, National Archives. 

 

4·3관련 무성기록영화󰡐제주도 메이데이’. 4·3발발 초기 제주 현지상황과 미군정 및 경찰의 토벌모습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전해주는 유일한 영화이다. 미군 촬영팀이 촬영한 이 필름은 국내 4·3관련 방송프로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흑백영상이다.  

이 필름은 ‘제주도 메이데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1948년 5월초 제주도 상황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최근 제주 4·3연구소가 입수한 이 필름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불타고 있는 마을(오라리 연미)에서 가옥방화로 피어오르는 연기와 비행기 한대가 섬 전체를 선회하고 있는 장면으로 이 기록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경찰이 트럭을 타고 실제로 무장대를 공격하는 것인 양 보리밭을 지나 진격하고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불타는 가옥으로 접근하는 경찰과 안타까운듯이 전소된 초가를 바라보는 여인들, 상황을 설명하는 정체불명의 여인. 이어서 항공에서 바라본 제주 산지항과 정뜨르비행장, 비행기로 제주를 방문한 딘 미군정장관과 민정장관 안재홍, 경비대사령관 송호성 등 일행의 모습이 나타나고 딘 장관이 제주 군정본부와 항만시설을 시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들판에 토벌나온 경찰과 경찰에 잡힌 노인내와 어린이들이 모습도 보인다. 제주읍내에서 경찰에 잡힌 모습, 살해된 남녀 시체들이 잠깐 비춰진 뒤, 카메라는 나무로 관을 만들고 있는 한 장의사의 모습을 클로즈업한다. 마지막으로 이 기록영화는 관덕정 앞 경찰 방어선과 진지들을 클로즈업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항공과 지상 입체적으로 촬영된 이 필름의 주무대는 당시 제주읍 오라리사건과 미군정장관 딘 소장의 읍내 주요시설물 시찰 및 경찰의 토벌작전이다.  

미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에서 입수한 이 필름은 촬영 원본으로 촬영처와 촬영일자가 기록돼 있다. 16mm 흑백 무성 필름인 이 영화는 미군 ‘SIGNAL CORPS’ (미군 통신대-촬영팀)에서 ‘SHAYDAK’이라는 카메라맨이 촬영했다고 나와있다. 또한 촬영은 1948년 5월 1일에서 시작하여 5월 5일까지로 기록돼 있지만 적어도 5일이상 제주에 거주하면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촬영팀은 딘 소장이 제주도 방문에 맞추어 움직여 지고 있다. 그동안 딘 소장은 5월 5일 제주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필름을 보면 5월4일부터 5월 5일까지 최소한 이틀은 머물러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즉 촬영팀은 독립된 촬영팀으로서 내도한 것이 아니라 딘 소장이 제주도 방문에 앞서 미군방첩대(CIC)와 G-2 정보조사팀등과 함께 선발대로 제주에 입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외국의 종군기자와 동아일보 기자도 함께 참여 했다. 선발대는 미 LST함정으로 4월29일 혹은 그 이전에 제주에 입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촬영은 5월 1일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필름에서는 그들이 타고 왔을 LST와 최소한 2대 이상이 미군 경비행기도 보인다. 

이 시기 입도한 촬영팀을 포함한 선발대의 목적 역시 미군정장관 딘 소장이 제주를 방문한 일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당시 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의 유고록은 딘 장관의 제주방문 목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48년 4월말 소련이 UN 무대에서 양쪽진영이 점령지역정책을 비교하면서 제주도  4·3을 들어 미군정의 실정을 질책하였고, 이에 발끈한 미국정부가 딘을 문책, 조속한 진압과 함께 ‘제주도 사태를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반란’으로 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4․28 평화협상을 통해 평화적 해결에 치중하던 중 이때 내려온 미군방첩대(CIC)와  G-2장교 들은 ‘해안선 5Km 이상 적성지역’ 운운하면서 화평보다는 토벌작전을 독려했다.” 

딘 장관의 제주도 방문은 4·3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딘 방문을 이후 4․28 평화협상은 결렬됐고, 9연대장이 김익렬에서 박진경으로 교체되는 한편  4·3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 규정돼 강경토벌작전으로 변모하게 된다. 아무튼 ‘제주도 메이데이’  촬영팀은 딘 장관이 방문을 전후해 발생한 5월1일 오라리 방화사건 - 5월 3일 경찰이 폭도로 가장해 경비대와 미군을 공격한 사건 - 딘 군정장관의 제주방문 - 5월 5일 최고 수뇌부회의 - 연대장 교체 - 강경토벌작전으로 선회하는 중요한 기로에서 필요한 영상을 16mm 카메라에 담았던 것이다.      

이들이 촬영한 내용은 5월 1일 오라리 사건, 제주도 현지상황과 토벌작전, 딘 장군의 제주방문과 주요시설물 시찰 등 크게 3가지로 나눌수 있다.  

5월 1일 오라리 사건은 항공과 지상에서 입체적으로 촬영되었다. 항공장면은 멀리 오라리 민오름이 보이고 불타는 오라리 연미 마을을 비행기로 선회한다. 카메라는 불타는 초가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장면으로 점점 클로즈업 된다. 지상에서는 경찰이 30-40명이 기관총이 달린 트럭을 타고 출동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카메라 맨은 어느새 트럭위에 올라서 흔들거리는 모습과, 트럭이 마을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트럭이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어느새 경찰 1명은 트럭에서 내려서 있다. 그러나 실제 출동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해프닝이 시작된다. 트럭에서 내린 경찰때문에 NG가 난 모양이다. 트럭을 다시 뒤로 빼고 내렸던 경찰은 트럭에 매달린채 다시 진입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방화 현장으로 진입하는 경찰들 역시 태연히 뛰어간다. 이와는 반대로 일부 경찰이 지나간 뒤편에서는 마치 영화 촬영을 하듯 몸을 움추리며 전투하는 모습으로 보리밭 돌담을 넘어 진격한다. 실제상황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연출된 것처럼 보인다(사실 현장에서 연출하고 있다). 뒤이어 거의 다타버린 초가를 안타까운듯이 아낙네들이 쳐다 보고있다. 꺼져가는 불길이 클로즈업되면서 오라리 현장 촬영은 끝난다.

두번째는 제주도 현지상황 및 경찰의 토벌작전에 대한 촬영이다. 먼저 좌표가 표시된 제주도 지도에 작전지역, 또는 어딘가를 암시하는 모습이 촬영된다. 활주로에는 미군정찰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카메라는 또다른 비행기에서 정찰기를 촬영한다. 멀리 사라봉으로 보이는 오름이 있어 제주읍내 상공으로 추정된다. 미군부대 병사와 산지항도 공중에서 촬영되었다. 이외에도 경찰이 야산작전 모습, 들판에서 경찰에 잡힌 노부부와 어린이가 함께 있는 가족과 이야기하는 모습, 제주읍내 모처에서 잡은 게릴라들에게 포승을 채우려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또한 산사람에게서 노획한 철창을 잡고 찌르는 시늉을 하는 청년들, 어느 초가집에서 희생된 시신과 관을짜는 주민들, 산사람들에게 공격받은 마을 상황을 이야기하는 정체불명의 여인도 등장한다. 즉 전반적인 내용은 제주도에서 무장대에 의해 방화와 함께 살인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기위해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하나 주목해야할 점은 경찰정보에 의해 경찰과 함께 동행하거나 밀착취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미군정은 경비대 보다는 경찰을 더 신뢰하고 있으며, ‘4·3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진압으로 선회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오라리 사건에서 방화조작이나, 4·3의 진로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경찰이 폭도로 가장하여 귀순자와 미군을 공격’하는 등 경찰의 조작 노력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세번째 내용은 딘 장관이 내도하는 모습과 현지시찰이다. 딘은 공항에서 경찰로 보이는 한국인 경찰이 삼엄한 경비속에서 제주도에 도착한다. 제주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인 관리를 대동하고 제주를 방문한 미군정장관 일행이 비행기에서 내린다. 경찰의 영접을 받는 딘 장관 뒤쪽에는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경비대총사령관으로 보이는 한국인들도 보인다. 이윽고 딘 군정장관은 늘어선 경찰로부터 사열을 받은 뒤 군용지프를 타고 곳곳의 시설물들을 시찰한다.  미군 장교의 안내로 부둣가의 선박들과 선발대가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LST군함을 둘러보고, 군정청등도 순시한다. 카메라는 경찰서 앞에 구축된 방어 진지와 초소 등으로 옮겨간다. 이상이 주요 촬영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살펴 보면 이 기록영화는 제주 현지상황을 스케치하고 정보분석용으로 촬영했다기 보다는 ‘불순분자들에 의한 방화와 민간인 살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데 촛점이 맞춰 있다고 볼수 있다. 즉 앞으로 진행될 강경토벌작전을 위한 구실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라리사건에 대해 제9연대에서 각종의 사진 및 물증, 범인까지 검거하고 제시했음에도 전혀 촬영되고 있지 않은 점, 이들이 촬영하고 있는 기간인 5월 5일 최고수뇌부회의가 이루어지는 점, 뒷날 9연대장이 바로 해임되고 강경토벌작전을 수행할 박진경으로 교체되는 점, 촬영한 내용이 경찰의 입장 또는 미군정이 토벌작전이 정당성을 심어주기위한 내용으로 촬영되고 있다는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하겠다.

이렇게 촬영된 내용은 정보보고 및 미군정이 강경 토벌작전이 정당성을 알리는 홍보용으로 쓰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내에 들어와있는 제주도 메이데이 필름이 이때 촬영된 내용이 전부는 아닐것이다. 입수과정에서도 필름들이 많이 뒤섞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일부분 모은 것 뿐이다. 입수하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부분이 많이 있을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외에도 다른 내용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이며 극비리에 진행되긴 했지만  4·3에 대한 진압대책을 논의를 하는 최고 수뇌부회의 장면 역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뿐만아니라 촬영시 미군사진가, 국내사진기자, 종군기자들도 여럿이 동행하고 있어 이때 함께 촬영한 사진도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자료도 많이 있을 것이고, 공개되어 있더라도 여전히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은 자료도 존재할 것이다. 4·3 진상규명을 위해 이러한 영상 및 자료를 미국에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일과 함께 현재 공개돼 있으나 미국립문서 보관소에 잠자고 있을 자료를 찾아내는 일도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과제라 생각된다. 

<출처: 4.3연구소 소식지 제28호>

 

 

 

 

<출처: 『4.3은말한다』>

상처받은 영혼을 향한 희망이 불어오는 곳
평화·상생·해원 바람의 진원지

제주4·3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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